마음이 피우는 꽃

햇살이 내려앉은 도시에

또 다른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야 할 곳을 찾아

뭉글게 뭉글게 그려가는

아침 풍경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반갑다는 듯 열리는 지하철 문을 따라

목발을 짚고 올라서더니

빈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체념한 듯

문 옆에 기둥을 의지한 채 서 있습니다

기둥 옆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보기가 불편했는지

“여기 앉아요”라며

소매 끝을 잡더니 말하고 있었습니다

타인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더니

그 표정 하나면 충분하다는 듯

“곧 내릴거니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하철에 사뿐히 내려앉은

챙김이 주는 흐뭇함을

한점씩 입가에 그려놓으며

두어 정거장을 더 지나 멈춰 섰을 때

무뚝뚝한 얼굴로 앉아만 있던 남자가

내리려는지 문 앞으로 걸어가는걸

보고선

아주머닌

금방 핀 꽃처럼 웃어 보이며

“총각…. 저기 자리 비웠슈….”

라며 눈짓을 합니다

젊은이는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선

그 자리에 앉았고

문 앞에 서 있던 그 남자는

다음 정거장에도

그 다음 정거장에도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종점에 멈추어 서자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의 웃음소리가 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을 때

목발을 한 남자는

커다란 나무 그늘을 만들어준

그 남자에게 다가가 묻고 있었습니다

“종점에 내리실 거면서 왜…. 미리....?”

라는 말에

 

자기 할 일을 다 한 수고로움을

미소로 감춘 해님처럼

너그럽게 웃어 보이고만 있었습니다

배려는

마음이 피우는 꽃인 것처럼.......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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