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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북두칠성>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정의


큰곰자리의 꼬리에 해당하는 α(두베)에서 η(알카이드)까지의 일곱 별. 영어권에서는 큰 국자(Big Dipper), 쟁기(Plough), 찰스의 마차(Charles' Wain)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일곱 개의 별이 국자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두斗자를 써서 북두칠성이라고 한다. 모두 2등내외의 밝은 별이고, 그 길이가 20°에 이르므로, 쉽게 식별할 수 있어 예로부터 항해가의 길잡이로서 친근한 별이다. β(메라크)로부터 α로 직선을 그으면 두 별의 각거리의 다섯 배쯤 되는 곳에 북극성이 있어서, 두 별을 지극성指極星이라고 한다. 북두칠성은 3월경에는 정오에 남중하고, 5,6월경에는 오후 8시쯤에 남중한다. ζ(미자르)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쌍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ε(알리오트)는 변광성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국자의 머리부터 차례로 천추天樞·천선天璇·천기天璣·천권天權·옥형玉衡·개양開陽·요광搖光으로 불렀으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여겼다.


칠성신앙


별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데 북두칠성을 신앙하는 칠성신앙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것은 도교의 전래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최근에 고고학적인 유물의 발굴에 의해서 자생적인 칠성신앙에 대한 학계의 해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조정에서 태일太一(우주의 본체 또는 만물의 근원)을 제사지낼 때 칠성신에게 제사지냈고, 무속에서도 칠성신을 모신 것을 알 수 있다. 이 칠성신이 어떠한 기능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태일초太一醮(太一에 지내는 제사)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점에서 기우의 대상신이었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늘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북극성은 천제天帝로, 북두칠성은 천제를 대변하는 별로 고대인들의 관념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북두칠성이 순차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지상의 계절이 바뀌면서 만물이 태동. 생장. 성숙. 수장收藏 등의 변화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그런가하면 북두칠성은 비를 내리는 신으로, 또는 인간의 수명과 출산을 관장하는 신으로 신앙되기도 했으며, 재물과 재능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믿어져 풍농을 빌거나 입신출세할 수 있기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북두칠성이라는 별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칠성신의 신격神格 그 자체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칠성신을 의인화하여 가시적인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의 실체로 간주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서울 인왕산 국사당에 소장되어있는 칠성도가 하나의 예인데, 칠성신을 구름 위에 두 손을 옷자락 속에 감추고 정좌를 틀고 앉아있는 7인의 남자 형태로 나타내었다. 사찰의 칠성도와 달리 머리 앞쪽에 신체神體가 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둥근 광채만 묘사되어 있을 뿐 두광頭光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런 무교의 칠성신 모습이 불교와 만나면서 칠여래라는 또 다른 모습의 칠성신으로 화현化現하게 된다.


무교의 칠성신이 언제부터 칠여래七如來로 승격되어 사찰 불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칠성도가 불화로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만은 대략 조선후기부터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왜냐하면 억불抑佛의 시대인 조선시대의 후기에 각 사찰들이 사원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고, 그 일환으로 수명장수나 양재초복禳災招福을 기원하는 하근기下根機의 중생을 사찰 내로 끌어 들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불화 칠성도는 주존主尊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와 좌우 보처補處인 일광변조보살日光遍照菩薩. 월광변조보살月光遍照菩薩, 칠여래와 칠원성군七元星君, 그리고 그 주변에 삼태육성三台六星과 이십팔수二十八宿로 구성되어 있다. 치성광여래는 기본 도상이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일광. 월광보살은 삼존불 형식의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칠여래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우뚝 솟아오른 혹과 같은 것)와 광배光背(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를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칠원성군에 불교적 도상을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칠여래와 함께 도교식 조복朝服차림을 한 칠원성군을 병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칠성도는 하늘나라의 별들을 그렸으되 별 그 자체가 아니며, . 보살을 그렸으되 그것은 대승불교의 여래나 보살이 아니다. 그래서 칠성 불화는 천국天國에 대한 인간의 외경심과 그 세계를 향한 종교적 체험과 기원 등이 불교적 만다라 속에 용해되어 있는 일종의 의인화된 천문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민속에서 보이는 칠성신의 기능을 종합하여 보면 대략 셋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비를 비는 신앙행위와 관련되어 물로 상징되고 비를 내리는 신으로 믿어진다. 칠석에 대한 설화 가운데 비를 내리는 설화가 있고 이것이 칠성신과 결합하는데 이것은 칠성신을 비의 신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민족에게 비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로써 농업을 주로 하는 우리민족에게 칠성신이 그 만큼 중요한 위상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받들어진다. 칠성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신앙과 관련되어 있는데 특히 어린아이의 수명을 수호하는 신으로 믿어진다. 우리나라에는 북두칠성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장수의 신으로 묘사된 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민간에 자리 잡은 칠성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속에서는 이 칠성신이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신격화되어 있음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재물과 재능에 뛰어나서 입신출세하고 과거에 급제하도록 칠성신에게 비는 신앙이 있다. 특히 제주도 무가 「칠성본풀이」는 재물과 소원성취의 기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후천개벽과 천지공사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근본이 칠성이다. “성신은 칠성이 주장한다.”(道典 4:141:2)는 말도 칠성의 움직임에 따라 각각의 별들의 좌표가 달라짐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시간의 흐름과 변환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양적 질적 위상이 달라진다.


별자리 칠성에서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민간에서 전승되는 칠성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의 장단은 결국 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의 삶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생장염장을 시간의 질적 마디라 한다면 이 또한 우주의 시계인 칠성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생명을 선仙과 결부시켜 왔다. 선仙의 세계는 무병장수의 세상으로 일컬어져 왔다. 칠성과 장수의 관계는 『북두칠성연명경佛北斗七星延命經』이라는 서명에도 잘 나타난다. 증산도의 「칠성경」에도장생이라는 구절이 등장함은 물론이다. 증산도의 생명의 선은 후천개벽과 연관되어 후천의 생명줄로 이어진다. 어린 호연의 수련에 칠성경과 개벽주가 쓰이고 있음도 이와 관련하여 이해해 볼 수 있다. 생명줄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청년 일곱 사람을 선출하시어 칠성도수를 정하시니 … “칠성공사는 후천 인간을 내는 공사요, 낳아서 키우는 공사니라.” 하시고후천 기운은 사람을 키우는 칠성도수七星度數이니, 앞 세상은 칠성으로 돌아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상제님의 천지공사는 낳는 일이요, 나의 천지공사는 키우는 일이니라.” 하시니라. … “칠성이라야 사람을 가꿀 수 있느니라.” 하시고칠성공사가 잘 풀려야 너희가 다 먹고살기가 요족饒足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道典 11:98:8~11:100:2) 


조자룡은 칠성七星을 태을太乙이라 한다. 칠성을 삼신의 의미로 파악한 것이다. 삼신은 여러 가지 뜻과 기능을 갖는데 그 중 하나가 자손을 점지하는 것이다. “자손은 칠성 기운으로 생기느니라.”(道典 11:57:7)는 구절에서 칠성의 삼신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칠성의 삼신적 의미를선천에서 후천으로라는 구도 속에서 이해한다면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道典 8:117:1)라는 구절과 연계된다. 이것은 천하사를 하는 일꾼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살릴 생生이라는 구절은개벽기에 창생을 살리는 약인 태을주와 관계된다. 이것은 칠성이 선후천 생명의 실상을 담고 있는 핵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이재석/최정규]

 

참고문헌

노중평,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 백영사, 1997.

한정섭, 『북두칠성과 불교』. 불교춘추사.

김일권, 「고대 중국과 한국의 천문사상 연구 : 한당대 제천 의례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문도를 중심으로」,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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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누에와 같도다

<누에>누에와 같도다


누에와 비단

누에는 나방의 유충을 말한다.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며 입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아주 유용하고 신비한 생물이다. 누에고치로부터 나온 실이 명주로서 비단을 만드는 재료이다. 비단은 고대부터 중국과 서역간의 교역 물품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로마 시대에 로마의 상류층은 중국의 비단을 수입하였는데 중국을 가리키는세리카’(Serica)라는 말도 비단(sericum)으로부터 온 것이다. 서역을 통한 중국과 서양간의 육상교역로는 비단길(silk road)로 알려졌다. 값비싼 비단을 생산하기 위한 양잠법養蠶法 즉 누에를 길러 고치를 생산하는 방법은 중국에서는 비밀로 여겨져 외부로의 누출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양잠법은 금령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과 서로 전파되었다.


흔히 양잠과 비단은 중국에서 고조선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최근의 고고학 발굴은 고대 한민족이 중국보다 양잠과 비단직조 기술이 앞섰음을 보여준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나온 옥잠(옥누에)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고대 한민족은 BCE 2700년경 신석기 시대에 이미 양잠을 시작했고 사직물을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대 단군왕검이 하백의 딸을 황후로 맞아 잠업을 관장하게 하였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일 것이다


누에의 일생

누에는 유충기간 동안 모두 네 번의 잠을 잔다. 그래서 누에의 나이는 1령에서부터 5령까지가 된다. 네 잠을 자고 난 다섯 살 누에는 뽕잎을 먹는 것을 중단하고 실을 토해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그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달 정도이다. 누에는 아주 예민한 벌레여서 누에를 키우기 위해서는 보통 정성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뽕잎을 깨끗하게 준비해서 먹이지 않으면 누에는 뽕잎을 먹지도 않으며 잠도 자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는 누에는 몸이 크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에를 기르는 일은 아기를 기르는 이상으로 정성을 요구하였다.   


민속에서의 누에

누에는 13 마디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일년 열두 달과 윤달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하늘 벌레라는 뜻의?’이라고도 쓴다. 누에를 키워 실을 뽑아내는 양잠은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큰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대 동방에서는 신농씨의 딸이자 황제 헌원의 부인이었던 누조?祖를 누에신으로 숭배하였다. 누조가 누에를 치고 양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신인 신농에게 바치는 선농제와 함께 누조에게 바치는 선잠제先蠶祭도 지냈다. 잠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누에 치는 여인을 시켜 제를 지내되 술을 사용하지 않고 차를 사용하였다. 마을 단위에서도 풍년제나 동제 때 선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때 마을에서 가장 베를 잘 짜는 할머니를 사제로 삼아 처녀들이 이 사제로부터 길쌈 재주를 물려받는 상징적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증산 상제와 누에

증산 상제는 사람 기르는 것을 누에 기르는 것에 견주어 말씀하였다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 같이 오르게 되나니 이르고 늦음이 사람의 공력에 있느니라.”(道典 3:180)  


또 야심가인 차경석이 보천교를 세우고 정읍에 그 본부를 크게 지을 것을 아시고 그러한 시도를 누에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정읍이 대창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道典 3:187)  


차경석이 지은 보천교의 십일전十一殿은 1922년부터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된 건물로 그 규모가 경복궁 근정전의 두 배에 이르렀다고 한다.(건평 136, 높이 87) 단일한 건물로는 우리나라 건축사상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건축에 사용된 대들보는 만주에서 가져왔다. 전내에 제탑을 설치하고 주위에는 용두용신을 조각하여 금으로 도금하였다. 또 황금색 기와를 올렸는데 이는 중국 황제의 거처를 본딴 것이었다. 십일전을 비롯한 보천교 본소는 당시 세인들의 이목을 크게 끌었으나 차경석이 죽고 난 직후 일제에 의해 헐리게 되었다.  


조선 땅은 누에와 같다

증산 상제는 또 한 일一자를 써놓고조선 땅은 한 일 자 누에와 같다라고 했는데(道典 1:22), 이는 누에가 실을 토해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고 나중에 다시 나방이 되는 등 신통한 조화를 부리듯 조선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대 동방에서는 누에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가 용이 되었다가 하면서 풍운조화를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중국의 헌원계 족속들은 누에가 변신하여 용이 된다고 믿었다. [김현일]


참고문헌

김대성, 『금문의 비밀』, 컬처라인, 2002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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