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사람들이 고대 한국문명이 세계 최초라는 점을 인식 혹은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기존 역사관의 한계 때문입니다. 근대 역사관은 크게 19세기에 등장한 실증주의 구舊사학과 20세기에 전개된, 역사가의 적극적인 해석을 중시하는 신新사학으로 구분됩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철저한 문헌고증과 다양한 해석 등으로 역사학에 많은 성과를 갖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두 역사관은 이제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혔고 인류는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한 시점을 맞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인류 문명의 황금 시절이던 환국-배달-조선 등 고대 한국문명을 올바로 해석하는 데 더더욱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해석하던 기존 사관들을 대신할 대안 같은 것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 인류에게는 기존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과 서, 과거와 미래가 소통하고 융합하는 이른바 ‘대통일의 역사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신교 사관 혹은 대한 사관大韓史觀입니다. 역사를 가진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인 신교神敎를 바탕으로 혹은 신교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구사 학과 신사학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점은 살리는 제3의 새로운 역사관, 그것이 신교神敎사관입니다. 신교는 환국 시대 이래 환족의 이동과 함께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 인류 정신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문화이고 종교이고 사상입니다. 고대문명에 대한 연구는 신교의 역사관으로 볼 때 그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당시의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지금 남아 있는 문화 유적과 기록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고대 문명이 세계 최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저 홍산문화가 기존 역사관으로는 쉽게 파악되거나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우하량에서 발굴된 돌무덤, 신전, 제단의 유적들, 지구촌 여러 곳의 지구라트와 피라미드들, 미국의 몽크스마운드나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의 고인돌도 모두 신교 문화의 정수精髓인 천제를 이해할 때 그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장 한국의 강단사학계에서도 신교의 우주론, 인간관, 신관을 근거로 홍산문화를 해석하는 학자가 아직은 거의 없습니다.

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림

신교사관, 대한 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인간을 단순히 신의 피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천지 광명을 체험하고 천지의 뜻과 목적인 이상 세계를 성취하는 역사의 주체로 본다>는 점입니다. 대한사관은 역사 해석을 넘어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까지 밝혀주는 시각이요 인식의 새로운 틀입니다. 나는 대한 사관이야말로 지난 오랜 세월 지구촌 인류를 괴롭혀온 식민사관과 대결 사관, 실증주의 사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 대한 사관에 대해서 언젠가 반드시 따로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는 그렇다 쳐도, 한국 정부는 왜 고대 한국문명이 세계 최초라는 점을 인식 혹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까?

▶먼저 한국의 역사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 그 생생한 실정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오랫동안 중국 민족이 하늘과 상제님의 대행자를 상징하는 용봉龍鳳문화의 원조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중국과는 아무 관계없던 저 만리장성 북쪽, 동방족의 생활 터에서 뜻밖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인류 문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홍산문명 혹은 요하문명이 그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중국인들이 주장하던5천 년 전의 용봉 문화 흔적보다 훨씬 앞선, 무려7천 년 이상 된 용봉 문화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됐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중국 정부와 학자들은 재빨리만리장성 밖의 북방 문명도 중국문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 맞춘 이론적 배경도 함께 마련하는 작업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중국은 55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들 소수민족의 독립을 막고 계속 중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두기 위해 <한족 아닌 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도 모두 중화 문명권에 속한다>고 선언하고 여러 가지 정책들을 만들고 실제 그것을 추진해 왔습니다.

먼저 1980년 이래 중국의 서북쪽 위구르족 지역이 중화 문명권이라 주장하며 위구르족이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철저히 탄압해 왔습니다. 이것이 서북공정西北工程입니다. 또 1986년에는 티베트 역시 중국의 한 지방정부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러고는 티베트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시키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남공정西南工程입니다. 나아가 중국은 최후의 야심작으로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했습니다. 만리장성 동북쪽의 고구려, 발해 등 대한민국의 옛 영토였던 넓은 지역이 과거 중국의 지방정부 영역이라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그 또한 중화 문명권으로 편입시키는, 후안무치한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 한국 정부에서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을 배정해 《동북아 역사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소속된 학자들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쪽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재 한국의 사학계와 교육계, 관계官界는 그동안 식민사관에 매달려온 이들이나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받고 영향을 받은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류를 이룬다는 것은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이나 역사 주제와 관련해 (설사 그 내용이 진실이더라도) 그들과 배치되는 이론이나 주장은 아예 공식 교육과정에 채택되지 못합니다. 반면 식민사관에서 왜곡된 내용만이 공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주입되고 있습니다.
환국-배달-고대 조선 이후 고대 한국문명은 어디로, 어떻게 연결됩니까?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세워진 환국에서 시작된 고대 한국문명은 배달을 거쳐 단군조선까지 무려7천여 년 동안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기원전 2333년 건국된 이래 무려 2,047년 동안 존속했던 단군조선은 서서히 힘을 잃고 결국 해모수라는 인물이 세운 북부여北夫餘로 국가의 맥이 이어졌습니다.

북부여가 비록 나라의 맥을 계승했지만 단군조선의 전 영역을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한민족의 활동무대는 이때부터 대륙에서 점차 동쪽으로, 그리고 한반도 쪽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만주지역에 북부여가 자리 잡고 한반도에는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 여러 나라가 난립했습니다. 이것을 한국사에서는 열국列國(여러 나라) 시대라 합니다.
200년 나라를 끌어간 북부여는 나중에 고구려로 이어지고 잘 알려진 것처럼 고구려를 비롯해 백제, 신라, 가야 등 4국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 뒤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 이는 다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조선말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가 해방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환국에서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한민족의9천 년 역사는 한국 고대 문명의 두 가지 핵심 단어라 할 신교 문화와 광명 사상으로 일관된 것입니다. 악의에 가득 차고 편협한 중화 사관이나 식민사관, 유물론적 실증주의 사관 같은 틀로는 그 면면한 역사의 진실을 결코 제대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교 사관, 한국의 고대 문명을, 나아가 근대사와 오늘을 조망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한민족은 물론 온 인류가 지나온 역사를, 그리고 다가올 내일까지 제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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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나로 시작되고 하나로 끝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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