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환단고기 역주본교정 보다가 왔습니다.”

 

 

 

‘환단고기 역주본펴낸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

 

 

지난 2월 선화(仙化·별세)한 안운산 종도사를 이어 지난 3일 증산도(甑山道) 2대 최고 지도자에 취임한 안경전(58) 종도사는 근엄함보다는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난 18일 대전 중리동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간담회장. 대외 노출을 꺼려 언론과의 만남을 피했던 안 종도사지만 이날만큼은환단고기 위서 논쟁은 이미 끝났다면서우리 국민이라면환단고기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선포했다. 그동안증산도의 진리’ ‘이것이 개벽이다’ ‘개벽 실제상황’ ‘증산도 대도문답’, 증산도 경전인도전(道典)’ 등을 펴내 증산도 가르침의 체계화와 대중화에 힘썼던 안 종도사는 이번 출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안경전 증산도 종도사는그동안 도전과 환단고기 역주본 편찬에 매진했다면서이제는 밖으로 나갈 것이라며 증산도의 세계화를 강조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한국 상고사를 기술한 책으로, 삼성기(三聖記단군세기(檀君世記북부여기(北夫餘記태백일사(太白一史)로 구성돼 있다. 신라 고승 안함로, 고려시대 문신 이암, 조선시대 학자인 이맥 등 당대 최고로 평가되는 지성들이 지은 책을 1911년 운초 계연수(桂延壽) 선생이 편찬했다. 위서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지만 한민족의 역사·문화·신앙·풍습 등 상고사 연구 자료로 최근 그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번역서만 20여 권이 나왔다.

 

안 종도사는독립운동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등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 논리도, 근거도 없다면서환단고기는 한민족 9000년 역사 중 부여(夫餘)의 역사와 그 이전의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아주는 중대 자료라고 했다. 그는 이어지금 우리는 사라진 역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다양한환단고기 번역본이 나왔지만 이번 역주본은 안 종도사가 30여 년 동안 작업을 펼친 역작으로 평가된다. 한문 원문을 일일이 번역하고 알기 쉬운 해설과 주석, 사진·지도 자료까지 첨부하다 보니 1300쪽이 돼버렸다. 이 가운데 해제만 500여 쪽에 달할 정도다.

 

안 종도사는 “1982년 환단고기 원전을 처음 접한 순간 너무도 엄청난 내용을 밤을 새워 다 읽었다면서이번에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중동 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한민족 문화에서 갈라져 나간 세계 여러 문화의 원형을 증명하려 했다고 했다. 그는현행 교과서에는 실증사관이라는 유물사관만 있을 뿐 인류의 정신사가 없다고 개탄하며앞으로 청소년·어린이용, 축약본 등 다양한 독자층을 고려한 출판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환단고기 역주본’은 지난 20일 시작돼 24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2서울국제도서전에도 출품됐다. 

 

환단고기 역주본 발간 등 그동안의 성과를 발판으로 안 종도사는 올해 증산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경전인도전(道典)’을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7개 나라 말로 옮겨 출간할 예정이다. 시기는 9월 초순이다. 도전 번역은 지난 12년간 무려 1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세계화 프로젝트다.

 

안 종도사는한국에서 발원한 사상이 본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케이블 방송인 STB상생방송을 미국과 일본 등 해외 한인사회에도 내보내 증산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현재 3000명에 달하는 성직자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12000명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 군과 읍 단위까지 도장(치성·수행 공간)을 세울 방침이다. 현재 증산도 국내 도장과 도방(도장보다 작은 치성·수행 공간)은 각각 220여 곳, 1000여 곳에 달하며 해외 도장도 20여 곳이 있다. 안 종도사는일제 식민사관에 이어 최근 만리장성 늘리기 등 중국의동북공정까지 역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우리 역사를 되찾기 위한 대중계몽운동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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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BgYpWmc3P4

"서울서 김서방 찾기 같은 작업미국 문서기록관리청 샅샅이 뒤져 

격전 속 헤어졌다 상봉한 두 여성 꼭 붙어있는 모습 '눈길

 미군에게 치료를 받는 위안부 여성[서울시 제공]

 

 

7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일본군 위안부 영상자료는 1940년대 미·중 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사진부대 소속 병사를 일일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들이 남긴 필름에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매달려온 2년의 작업이었다.

 

서울대 정진성 교수 연구팀이 끈질긴 조사 끝에 찾아낸 병사는 미군 164통신대에서 사진을 찍던 에드워드 C. 페이 병장.

 

연구팀은 페이 병장이 남긴 흔적을 쫓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필름 릴(reel) 수백 개를 샅샅이 뒤졌다.

 

영상 발굴에 참여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조각조각 끊어진 필름더미를 하나하나 확인해 모은 것이 18초짜리 영상"이라며 "마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은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의 가장 큰 의미는 한국인 위안부를 찍은 영상을 최초로 찾아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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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이정의 두 길


1 4월 초파일치성을 봉행하신 후에 태모님께서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아느냐?” 하시니


2 김원명이 아뢰기를 “모든 일에 원리정칙(原理正則) 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니라.


3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형이정에 두 길이 있으니 공()은 닦은 데로 가고 죄()는 지은 데로 가느니라.” 하시고


4 “너희들은 잊어도 나는 아느니라. 남 모르는 공부를 많이 해 두라.


5 시시(時時)로 지은 죄는 하늘이 벗기려 해도 못 벗기고, 시시로 닦은 공은 하늘이 뺏으려 해도 못 뺏느니라.” 하시니라.


앞으로는 미륵 운 ; 불교 기운을 거두심


6 이어 말씀하시기를 “4월 초파일 행사는 석가불의 탄신일이니 불가(佛家)에서나 할 일이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시고


7 “세상 돌아가는 철을 찾아야 하나니 앞으로 초파일 치성은 절후(節候)를 찾아 봉행함이 옳으니라.


8 이것은 곧 본래의 뿌리를 찾는 일이니라.” 하시니라.


9 또 말씀하시기를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라 하니 뜻이나 알고 부르는가?” 하시고


10 “앞으로는 미륵 운이니라. 선천 종교는 씨가 다 말라죽었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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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방송을 통해 수없이 방영됐던 위안부 영상자료 속 여인들은 사실 중국인이었다. 영국군이 버마(현 미얀마) 인근 일본군 사령부를 점령한 뒤 촬영한 것이다.

 

한국인 위안부 영상자료에 학술적인 가치를 크게 두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감춰져 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서와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위안부 여인들의 세세한 표정, 행동 등이 이 영상자료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이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중국 송산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꼭 붙어 앉은 위안부 여성(사진 오른쪽)[서울시 제공]

  

영상을 통해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도 적지 않다.

 

일례로 영상에는 위안부 여성 7명 가운데 2명이 팔짱을 낀 채 꼭 붙어있는 장면이 나온다.

 

강 교수는 "앞서 공개된 중국 운남성 송산(松山) 위안부 사진 4장을 보면 군인의 심문을 받는 여인 2명이 있다" "지금까지는 뒷모습만 나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영상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 둘과 동일인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간 공개된 사진 자료로 추정해보건대 이들은 미·중 연합군의 송산 공격 당시 헤어졌다가 상봉한 것으로 보인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만난 터라 서로를 의지하며 붙어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1944 9월 일본군이 점령해 있던 송산을 미·중 연합군이 탈환했을 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생존해 포로로 잡혔다. 나머지는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거나 전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 속 여인들은 모두 송산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체포된 이들이다. 한국인 5, 중국인 1, 일본인 1명으로 추정된다.

 

이후 중국군은 송산 위안부들을 곤명(쿤밍) 포로수용소로 데려갔다. 수용소에는 조선인 25(여성 23·남성 2)이 있었다. 10명은 송산 지역, 13명은 등충(騰沖) 지역 위안부였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산 위안소에서 촬영된 사진 속의 만삭 여인이 자신이라고 밝힌 고() 박영심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2000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 준비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밝혀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은 박 할머니는 2006년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9명이며, 이 중 38명만이 생존해 있다.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대 연구팀은 계속해서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자료를 추적할 계획이다.

 

위안부를 촬영한 사진으로는 1944 8월 버마 미치나에서 미군의 심문을 받는 장면과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미군 심문 장면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관련 영상이 남아 있는지 추적했지만, 발굴에 이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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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소녀상 조례 日입장과 다르다? 같아선 안 돼" 

 

- 2 27일 발의된 조례안, 우여곡절 끝 제정

- 주요 골자는 피해자 지원 사업과 기념사업

- 할머니 살아계실 때 진정한 사과, 법적 배상받아야

- 조례안 통과, 시민 여론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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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 6 30 ()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정명희 의원(부산광역시의회)

 

◇ 정관용> 오늘 부산시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그리고 소녀상에 대한 보호 근거를 담은 조례안을 제정했습니다. 그야말로만시지탄이런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데요.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부산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정명희 의원 연결해 봅니다. 정 의원 안녕하세요.

 

◆ 정명희> 안녕하세요.

 

◇ 정관용> 주요한 내용이 무엇이죠?

 

◆ 정명희> 이 조례안의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위한 지원사업과 기념사업으로 두 가지 사업을 나눌 수 있고요. 지원사업에는 우리 생활비를 지원하고 장제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요. 그다음에 기념사업으로는 피해자에 관한 조형물이나 동상 등 기념물의 설치, 지원, 관리 사업과 함께 역사적 자료의 수집, 보존, 조사 연구 또 피해자에 관한 교육, 홍보. 또 피해자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국내외 교류 등등의 기념사업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습니다.

 

◇ 정관용> 먼저 그 지원사업은 생활비도 주신다고요. 얼마씩 드리는 겁니까?

 

◆ 정명희> 100만 원씩 드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정관용> 부산시에 거주하는 피해 할머님들만 대상이 되겠죠?

 

◆ 정명희> ,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기념사업으로는 당장은 이제 일본 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부산시가 책임지고 이제 관리하게 되는 거죠?

 

◆ 정명희> 그렇죠. 일본 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염두에 두고 이 소녀상이 합법적으로 보호되고 관리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이 동상 세워진 후에 현수막 훼손, 일부러 쓰레기 갖다 놓고 이런 행동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걸 다 못하게, 일종의 처벌도 할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되는 거죠?

 

◆ 정명희> 처벌까지는 모르겠지만 합법적으로 지원되고 관리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쓰레기 더미와 함께 방치되는 일은 할 수가 없는 거죠.

 

◇ 정관용> 그렇죠. 그밖에 또 다른 기념사업도 이제 부산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거고요.

 

◆ 정명희> .

 

◇ 정관용> 그나저나 이 조례안 제출된 게 언제였습니까?

 

◆ 정명희> 2월 2727일 날 제가 조례안을 발의를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왜 여태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 정명희> 조례안 상정도 여차저차의 이유로 또 늦어졌고 늦어진 조례안 상정조차도 문희상의 일본 특사 방문을 이유로 갑자기 상정을 연기시키는 바람에 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게 됐습니다.

 

◇ 정관용> 여차저차 이유가 뭐예요, 그러니까 상정의 이유가 늦게 된.

 

◆ 정명희> 여차저차. 일단 자유 한국당 의원들께서 반대를 많이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아무래도 이 조례안 심의를 정권이 바뀌고 난 뒤에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 하에 늦춰진 부분도 있고요.

 

◇ 정관용>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왜 반대했어요?

 

◆ 정명희> 자유한국당 의원들께서는 이게 영사관 앞에 불법 시설물인데 이것을 합법화하는 게 맞느냐라는 논리신데 그 논리는 일본 영사관의 논리거든요. 그런 논리로서 반대하셨죠.

 

 

부산광역시의회 정명희 의원 (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그 부산시의회는 자유한국당 의원 숫자가 더 많잖아요?

 

◆ 정명희> 대부분이 자유한국당 의원님이십니다. 마흔일곱 분의 의원 중에 국민의 당 두 분,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저 혼자 뿐이고, 나머지 분들은 다 자유 한국당 의원들이시죠.

 

◇ 정관용> 그러니까 이분들이 미적미적하고 상정조차 안 하고 있다가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니까 상정에 적극적으로 바뀐 거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 정명희> 아니요. 정권이 바뀌고 난 뒤에도 상정을 하기로 한 날 갑자기 문희상 일본 특사 방문을 이유로 해서 상정을 안 시켰죠. 그럼으로써 저희들이 여러 가지로 고성이 오가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게 된 거죠.

 

◇ 정관용> 그러다가 어떻게 이게 상정되고 본회의 통과까지 됐습니까?

 

◆ 정명희> 저는 이게 시민 여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민 여론이. 문희상 일본특사 방문을 이유로 해서 명분으로 해서 연기를 시켰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시민의 여러 가지 어떤 걸 받게 된 거죠, 압박을. 그럼으로써 시민 여론에 졌다라고밖에 볼 수가 없는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본래의 뜻은 자유 한국당 소속 부산시 의원들은 이 조례 만들기 싫은 거죠?

 

◆ 정명희> 그렇죠. 조례안 심의 하루 전날까지도 많은 분들이 반대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다가 시민들 압력이 워낙 세니까 입장을 바꾼 거군요.

 

◆ 정명희> , 그렇죠. 공식적으로 반대하기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어렵지 않겠습니까?

 

◇ 정관용> 아무튼 뭐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조례가 제정됐습니다. 대표 발의하신 분들한테 우선 축하 말씀을 드려야 되겠고 느낌이 어떠세요?

 

◆ 정명희> , 너무 좋죠. 좋은데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이제 남은 건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아내어야 하는데 그것도 우리 부산에는 한 분 계시거든요. 이게 이 위안부 문제가 전쟁 범죄임을 증언해 주실 수 있는 부산에 계신 단 한 분이시거든요. 이분이 살아 계실 때에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아야 된다는 그런 의무감이 또 생겼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또 여러 가지로 무겁기도 합니다.

 

◇ 정관용> 더 하실 일이 계속 이어져야죠. 이미 서울시나 이런 데는 이런 조례가 다 있죠?

 

◆ 정명희> 서울시하고 경기도 하고 경남하고는 있지만 부산시 같은 경우에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일본 영사관 앞에 이게 위치를 함으로써 또 위안부 합의의 그 무효화를 외치면서 설치가 된 부분이라 또 강제 철거당했지만, 시민의 힘에 의해서 다시 세워진 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곳과는 또 다른 조례 제정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렇죠. 이 조례 제정에 대해서 오늘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이건 일본 입장과 맞지 않다 이런 비판적 입장을 나타냈는데 일본 외무상한테 한 말씀하시면..

 

◆ 정명희> 당연히 일본 입장과 이거는 같을 수가 없는 거죠. 같았으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정명희> .

 

◇ 정관용> 부산광역시 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정명희 의원이었습니다.

 

[CBS 시사자키 제작팀] woo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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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도종환 의원 인사청문회



https://youtu.be/dWhrI39abS0 (유튜브 영상)
▼ 청문회 장면


유성엽 위원장-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도종환 문체부장관 청문회에서

장관후보자의 의지를 알아보기 위해 서면질의를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유성엽 위원장은 항일운동의 근간이자 민족종교인 보천교의 견해를 물었을 때

도종환 의원은 준비된 자료를 통해 보천교를 서면으로 제출하기로 하였고,

그 보천교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주 차경석이 전북 정읍에서 창립해서 동학정신을 계승한 증산교 계열, 신흥민족종교라고 했고  당시 600만명의 교세를 확장하였으며 항일운동단체로서 가장 많은 항일 기사를 작성했고 신인동맹, 비밀결사를 결성해서 일본의 신사참배반대를 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자금을 비롯해서 독립운동에 상당한 재정을 지원했으며 당시 김구 선생께서도 "정읍에 빚을 많이 졌다"고 정의해주셨고



민족운동으로 월간지 보광창간및 보광사 출판사 설립,  보천교 청년단 소년단 조직 등을 결성했으며. 그러던 것이 일제는 보천교 해체작업 실시했고 보천교 본부 십일전을 허물고 해체된 목조 등은 조계사 대웅전 등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1936년 교단이 해체된 후 역사적인 평가와 연구가 미흡하다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 새로운 역사적 재조명을 해야된다'고 했다.

이 역사적 재조명을 언제 어떻게 하실건지 물었고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각 처부서와 협의해서 재조명을 잘 해보겠다고 차분하게 답변을 했다.


또한 유위원장이 근대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보천교의 십일전 등 보천교 복원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복원을 꼭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지만, 문화재청에만 미루지 마시고

장관되시면 문화재청과 협력해서 본격적,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십사하는 당부를 한 번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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