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잦아진  지진  한반도… 30년 전보다 3배 이상 많아졌다

<지진>잦아진  지진  한반도… 30년 전보다 3배 이상 많아졌다

 


 [인천 백령도 해역 4.9 지진… 9년 만에 가장 큰 규모]

국내 지진 중 여섯째로 커이틀간 여진 9차례나 지속

 

- "더 이상 안전지대 아니다"

6·25 당시 평양 부근서 6.3 강진 일어난 기록도

학계 "작은 지진 자주 생기면 잦은지진 발생 확률 높아져"

 

지난달 20일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0 강진(强震)에 이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규모 9.0)으로 큰 피해를 본 일본 센다이 해역에서 지난 18일 규모 5.9 강진이 또 발생했다. 같은 날 인천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도 국내 역대 순위 6위 지진(규모 4.9)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지진은 지난 18일 오전 7 2분쯤 백령도 남쪽 31㎞ 해역에서 발생했다. 지난 2004년 경북 울진군 해역에서 일어난 지진(규모 5.2)에 이어 9년 만에 가장 규모가 컸다. 특히 19일 오전 5시쯤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규모 2.3 여진이 발생하는 등 이틀 동안 총 9차례 여진(규모 2.2~3.3)이 발생, 1978년 기상청이 지진 계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여진이 나타났다.  

 

한반도 발생 7대 지진 지도

기상청 관계자는 "(백령도에서 약 200㎞ 떨어진) 서울은 물론 충남 홍성·서산 등지에서 '몸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지진 유감(有感·지진의 진동을 느끼는 것) 제보가 잇따라 들어왔다"면서 "백령도에서는 '' 하는 큰 소리와 함께 2층짜리 건물이 흔들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백령도 지진보다 에너지 강도가 40~50배나 큰, 규모 6 이상의 대형 지진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6·25 전쟁 중이던 1952 3 19일 평양 부근에서 규모 6.3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러시아 관측소)이 있고, 옛 문헌에는 '경주 지진으로 100여명이 숨졌다'(799), '속초 부근 바다가 지진으로 터지고 설악산 흔들바위 부근에 암석 산사태가 일어났다'(1681)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반도의 지진 발생이 갈수록 잦아지는 것도 걱정스럽다. 기상청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지진이 연평균 15.7회 발생했는데, 1990년대 25.5, 2000년대 43.6회에 이어 최근 3(2010~2012) 동안에는 연평균 50회로 늘었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처럼 잦은 지진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지진의 전조(前兆)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세대 홍태경 교수(지구시스템과학) "지진의 특성상 작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면 큰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규명하기 위해 서해 해저(海底)의 지각을 조사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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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영화) 루시

그냥 다운로드 사이트에도 올라왔네요. 인간의 뇌를 100% 다 사용하게 된다면???
루시는 어떤 사고로 인해 인간의 뇌를 사용하는 비율이 20% 30% 50% 계속 올라갑니다. 루시는 주변의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지식의 궁극을 추구하게 됩니다. 과연 루시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우리나라 배우,최민식도 나오고 재미있습니다. 한글도 나오고. ^^ 꼭 한 번 보세요!

기억에 남는 대사)
*
Life was given to us a billion years ago
우린 10억 년 전에 생명을 선물 받았다.
Now you know what to do with it.
그것으로 뭘 해야 할지 이젠 당신들도 알겠지.

*

예전엔 내가 누군지, 뭐가 되고 싶은지 늘 고민했는데 뇌의 가장 깊은 곳까지 열리니까 이젠 확실히 보여.

 
[루시 포스팅 어느 블로거의 글 중...  출처: http://dopilates.kr.pe/220118193783 ] 

 

 

 

 

 

 

루시는 맨 마지막에 뇌의 100%를 쓰면서 이 우주를 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 2가지 의문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 다른 하나는 '우주는 어떻게 둥글어가나?' 하는 것입니다. 루시는 결국 자기가 누구고, 우주는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봅니다(물론 좀 부족하지만). 이로써 루시는 이렇게 대답하게 됩니다. "I'm in Everywhere."  즉, 우주와 oneness 하나됨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을 영화에서는 루시의 육체가 온전히 사라짐으로 표현했습니다.

루시는 영화에서 knowledge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 지식의 궁극은 무엇인가?

나와 우주. 우주와 나.

내가 누구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그로 인하여 oneness 하나됨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나 라고 하면, 태어나서 초중고대학교를 거치고 직장을 얻고 현재 밥먹고 살고 있는 나만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의 일부일 뿐이죠.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천상에서 내려왔는지,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죽은 뒤의 사후세계, 신의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요. 

또 사람들은 우주라고 하면, 태양계, 무중력의 우주정도를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것을 파악하지 못하죠. 우주는 무엇을 위해 돌아가는가? 지구는 자전하고, 지구와 태양계 온 우주는 공전하는데,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우주는 인간을 이 지구에서 기르는가? 과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단백질의 우연적 합성이 인간인가?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천생이 구도자-도를 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주와 나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은 소책자 신청이나, 문자 부탁드리구요.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루시가 겪었던 경지는 도통의 경지라고도 볼 수 있을텐데요. 도전에 도통에 관해서 표현해 놓은 부분이 있는데 한 번 보시죠. 

 

현세에는 도통이 없습니다. 이것은 상제님꼐서 도통문을 여실 때 전주 고송암, 경상도 안제암, 함열 함석태, 하동 문화재, 두봉사 등이 함께 도통 기운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상제님의 천지공사- 선천의 원한을 해소하여 인류를 건져 후천으로 넘기시는 인류의 역사 이정표, 시간표-를 방해하여, 상제님께서 도통문을 잠그시게 됩니다. 인류의 생사화복과 도통은 모두 북두칠성에서 나오는데, 이 기운을 잠가서 현세에는 신명은 조금 보고 약간의 다른 능력은 보유할 수 있지만, 도통의 경지는 없게 됩니다.

이로써 인류는 옛 도통과 신이한 기록들을 모두 전설로 치부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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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09.28. 09:48)
(서울=연합뉴스) 정 열기자 = KBS-1TV는 대하다큐멘터리 `해방' 방영으로 인해 6주간 방영을 중단했던 「역사스페셜」을 이번 주부터 다시 방송한다.

오는 10 2일 저녁 8시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우리 역사를 기록한 책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소개하고 최근 일고 있는 `환단고기 열풍'의 의미를 분석한 `추적! 환단고기 열풍'을 방영한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이렇게 네 종류의 책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환단고기에서는 우리 역사를 단일민족에 의한 대통일국가로 묘사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이 활동했던 무대를 중국과 러시아, 몽고,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우리 민족은 문자를 최초로 발명했고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 문명을 전파한 하늘의 민족이라는,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환단고기는 일부 재야 학자들에게는 경전으로, 기존 사학계에서는 위서로 평가받고 있으나 최근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잃어버린 상고사를 회복하자는 운동과 맞물려 환단고기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환단고기 열풍 전파의 주역은 다름아닌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으로 최근 각 통신의 한국사 방은 환단고기 논쟁으로 뜨겁다.

환단고기에 대한 관심은 서점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번역한 책은 이미 10종류 이상 출판됐는가 하면 지금까지 1백만권 이상 팔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주 「역사스페셜」 시간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찬란하게 기술하고 있는 환단고기의 내용과 최근 일고 있는 환단고기 열풍, 그리고 이를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는 기존 사학계의 입장 등을 심층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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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이 많은데 적어도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그 이전시기는 참으로 백성에게 좋은 시기였다.

1. 우선 조선시대지리지와 각종기록들은 고려가 하지못한 고구려영토수복을 이루어냈다고 기록한다. 오죽하면 숙종실록에는 조선땅이 고구려땅보다 2배나 넓은데 왜 국력이 고구려보다 못하냐고 탄식하는 기록이 있다.

태조실록에는 태조이성계에 충성맹세한 타타르와 여진계통의 부족이 등장하는데 무려 50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아직도 몽골서부에 사는 올량합도 있으며 금나라의 주요 체계였던 맹안부족도 여럿있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지금 대동시일대가 당시 올량합부족의 땅으로 조선의 영토였다. 실록에는 폭과 넓이가 만리가 넘는다라고 하고 세조때 작성한 동국지도에는 흑수말갈과 거란 안시성 백암성을 그려넣고 전부 조선땅이라고 표기했다  영토에 있어서는 과거 고구려에 별로 뒤지지 않는다.

2. 국력

고려시대기록을 보니 우리의 인재와 문물이 송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었다. 물론 조선시대의 인구나 문물로 봐서 명나라에 약간 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전왕조에 비해 조선왕조는 세금체계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민원을 중시해서 백성들의 삶이 이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고구려시대에는 귀족들이 고리대금업으로 일반백성을 노비로 만들어 버려 영양태왕이 국가에서 백성에게  돈을 빌려줘야만 했다. 즉 중산층의 몰락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상업이 발달하고 중산층이 두터웠다.

귀족들의 횡포가 줄었던 것이다이런 것에는 세종대왕의 공로가 지대한 것이 사실이다.

세조시기에 조선군은 43만으로 그중 궁병이 30만이었다. 기병과 보병은 1:2 비율이었다. 일부지방은 기병이 보병과 비슷한 곳도 있다.

고려의 70만대군에 비해 적으나 그 질적인 면은 더 뛰어났다. 명나라사신이 조선대신에게 타타르군이 조선군의 궁병이 무서워 감히 조선땅에 들어오지를 못한다라고 칭찬하는 기록이 존재한다. 50만 타타르군은 명나라수도를 포위하고 황제를 포로로 잡을 정도로 강했지만 조선군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조선후기에도 조선군의 활쏘는 실력은 대단하여 백발백중이었다. 병자호란때 2명의 장수가 각각 기병수천명과 조총병과궁병수천명을 이끌고 왕을 구하러 남하했는데 기병을 이끌던 장수는 청나라군에 포위되어 전멸했지만 조총병과 궁병을 이끌던 장수는 언덕으로 올라가 진을 친뒤 청나라군을 공격하여 수천명을 죽였다. 명중률이 뛰어나니 제아무리 말을 타고 달려도 명중시켜 죽였던 것이다.

청나라2대황제 홍타이지는 겨우 3만의 기병으로 명나라 방어선을 뚫고 베이징을 포위했다. 조선이 10만의 청나라기병에 방어선이 모두 뚤리고 수도가 함락당했는데 명나라는 겨우 3만의 병사도 못막았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명나라 요동방어군의 기병은 겨우 수천명수준이었다. 조선의 평안도 방어군7만중 기병이 2만명인 것에 비하면 당시의 조선군사력이 명에 비해 그리 떨어질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군의 기록을 보더라도 평양성전투에서 조선군15만 명군5만이 참전했고 함경도 전투에서 여진과조선연합군20만이 왜군을 포위했다라고 적고 있다. 이에 왜군장수만 겨우 목숨을 부지해서 도망왔다라고 적고 있다.  임진왜란당시의 일본군30만이 만일 유럽의 그 어떤나라나 명나라를 바로 침공했을때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장담하건데 잘난체하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모두 전멸했을 것이다. 명나라역시 조선이 돕지 않는다면 땅의 절반이 먹혔을 것이고 굴욕적인 화친을 해야했을 것이다. 명나라는 일본의 해적떼수천명도 막지못해서 연안지방이 초토화된적도 있다.

태조이성계가 명나라를 침공하려 할때 주원장이 겁이나서 짓던 궁궐도 취소하고 잠을 못이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3. 역사의식

적어도 임란이전에는 자주성이 강했다. 그러나 임란이후 귀족들은 귀고리도 하지 못했다 명에서 여진족의 풍습이라고  하지말라고 하니까~~~

명이 패하니 뜬금없이 소중화를 들고 나왔다. 우리가 문물의 중심이다 이런 것이다.~~~

그러나 세조때 기록을 보면 명이 타타르에 패하자 가소롭다라고 했다고 한다

세조의 초상화는 유일하게 통천관(황제의관)을 쓴 것이 있다

지금 남은 기록은 인조이후 새로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청나라에 땅 다뺏기고 소국으로 전락한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인조와 이후의 왕들이 조작에 가담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그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해군이 계속 왕으로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임금으로 계속있었다면 오늘날 한반도와 동북3성의 대부분과 산둥은 계속 조선땅으로 남았을 테니까 그 넓은 영토와 2억이 넘는 인구로 강대국으로 남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

왜군의 명나라 침공을 저지하려고 파병한 명나라와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려고 파병한 미국

비록 명과 미국모두 그 이후 많은 불공정 처사로 비난을 받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미국을 좋아한다. 만일 미국의 중국의 경제적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느 편을 들까? 지금 중국이 우리의 제1의 경제파트너임을 감안한다면 미국편을 들면 우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게 뻔하다. 그럼 병자호란이전처럼 의리로 미국을 돕자는 쪽과 실리를 지켜 중립을 하자는 편으로 나눌 것이다

당시 지배층뿐 아니라 일반 민중도 의리를 지켜 명나라를 돕자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당시의 지배층과 백성들의 잘못은 의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우둔한 군주를 내세운 것이다. 이왕이면 광해군처럼 똑똑한 분을 임금으로 내세웠어야지 ....

 4. 지도자의 자질

 우리기록을 제아무리 뒤져봐도 흉년에 반찬 3가지 이하로 제한한 왕조는 조선이 유일하다. 궁녀수와 무덤의 규격에 있어서도 제일 검소하다. 정조때에는 백성의 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임금이 새벽4시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수시로 관리를  불러 묻고 해결했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발해 요 금은 강성했지만 그 백성들의 삶이 과연 조선보다 낳았을까?

귀족들이 횡포는 이루 말할수 없이 심했다. 고리대금으로 백성을 괴롭히고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실록을 보면 양반이든 백성이든 최대한 공평하게 법집행을 한 것이 많다. 그 이전시기 귀족이 종을 죽여도 누가 처벌할까? 그러나 조선은 처벌기록이 많다.

이방원즉 정안대군 태종의 형인 회안대군 이방간이다. 형제이지만 두 가문은 크게 달랐다. 정안대군의 가문은 문을 숭상했고 회안대군의 가문은 무를 숭상했다. 회안대군의 자제는 신궁으로 태조이성계와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자존심도 강했다.

당시 왕자의 난에 대한 기록을 보면 조정대신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무관들이 회안대군을 지지했음을 알수 있다. 회안대군의 자제는 이미 장성하여 활약한 반면 정안대군의 자제는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만일 회안대군이 이겼다면 조선은 그 이전왕조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한글창제도 없었을 것이고 세금체계도 구체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자존심하나로 전쟁을 치루었을 것이다. 태종은 왕이 된뒤에 영락제가 여진땅을 요구하자 20만대군으로 먼저 침공할까 고민했다. 하륜같은 이는 왜군까지 불러서 같이 명나라를 침공하자라고 건의했다. 태종은 주저했다. 세종은 아예 대놓고 명나라를 치켜세웠고 세조는 야심이 있었으나 단종복위운동이 무서워 해외원정을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회안대군이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바로 전쟁이다.

최근에 방영하는 칼과꽃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평화를 외치는 영류태왕과 자존심을 외치는 연개소문의 갈등을 볼수 있다.  중국쪽 자료를 찾아봤더니 연개소문이 당나라사신에게 불과 몇십년전까지 니네는 우리를 섬기던 나라였고 우리는 너희의 상국이었다라고 말하는 기록이 있었다.

자존심과 자긍심 때문에 연개소문은 당과 수차례 전쟁을 겪었고 물론 이겼지만 백성들은 수십만이 죽고 집을 잃었다. 과연 그 백성에게 연개소문은 좋은 지도자였을까?

나는 단언코 정안대군의 가문이 옳다고 본다. 지도자는 무릇 백성을 하늘같이 섬겨야 한다.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는 지도자는 좋은 지도자가 아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 우유부단해진 정안대군의 후손들은 급기야 숙종시기 청나라의 삼번의 난으로 최대의 기회를 맞았다. 오삼계와 강희제는 서로 조선에 10만대군을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지도층과 백성은 모두 이때 굴욕을 씻어야 한다고 했다. 조선군부는 10일만에 심양을 함락할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숙종은 사태를 지켜보자며 관망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최대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린 숙종은 이후 국경조약을 청과 맺어야 했다

많은 이들은 조선왕조를 비난한다. 자존심도 없고 굴욕의 역사라고 백성이 어려운 시기의 역사라고?

물론 권문세도가가 정권을 잡고 어린이 왕을 앉히고 국정을 휘어잡은 정조이후의 시기는 굴욕의 역사가 맞다. 그러나 그 이전시기의 왕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발해 요 금의 어떤 왕조보다더 검소하고 백성을 위하는 왕조였다

지금 우리는 김춘추와 김유신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그러나 고려시대기록을 보면 그 두사람을 가장 치켜세운다. 왜냐하면 전쟁을 멈추고 백성을 돌본 시초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개토태왕이나 근초고황제같은 정복군주가 아니라 전쟁을 멈춘 군주를 제일의 군주로 본 것이다

훈족에 굴복한 유방은 중국에서 좋은 군주로 꼽힌다. 왜냐 백성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진나라의 수많은 악법을 폐지하고 백성을 하늘로 여겼으니 비록 굴욕적인 군주이기는 하나 백성에게는 좋은 왕이었던 것이다. 훈족을 밀어내고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를 백성들이 좋아할까?  중국쪽 드라마를 보니 평가가 좋지 않음을 알수 있었다.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은 수없이 죽고 세금에 고생했던 시절로 기억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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